유명한 인피니티풀 말고, 동네 호텔수영장에 조용히 다녀와봤더니

얼마 전 부산 영도 쪽 골목을 걷다가, 바다보다 동네 슈퍼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은 호텔에 묵은 적이 있다. 사실 예약할 때는 객실보다 호텔수영장이 궁금했다. 유명 리조트처럼 사진이 쏟아지는 곳은 아니었고, 후기에도 수영장 이야기는 몇 줄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이 오히려 마음에 남을 때가 있다. 사람이 적고, 물소리가 크게 들리고, 여행보다 하루를 살짝 빌려 사는 느낌이 드는 곳.
사진보다 조용함이 먼저였던 호텔수영장
내가 갔던 날은 평일 목요일이었다. 체크인은 오후 3시였고, 수영장은 오후 4시부터 밤 9시까지 열렸다. 객실에 짐을 놓고 4시 20분쯤 내려갔는데, 수영장에는 나를 포함해 네 명뿐이었다. 아이가 있는 가족 한 팀, 책을 들고 선베드에 앉아 있던 사람 한 명, 그리고 천천히 물에 들어간 나.
규모는 크지 않았다. 왕복으로 길게 헤엄치기보다는 몸을 담그고 쉬는 정도에 가까웠다. 대략 15미터 남짓한 직사각형 풀, 깊이는 성인 허리에서 가슴 사이쯤이었다. 화려한 조명이나 음악은 없었고, 대신 옆 건물 창문과 낮은 담장, 멀리 보이는 항구 쪽 크레인이 배경처럼 있었다. 솔직히 첫인상은 “여기가 여행지 수영장 맞나”에 가까웠다. 근데 10분쯤 지나니 그 밋밋함이 좋았다.
사람 적은 시간은 생각보다 분명했다
호텔수영장은 같은 장소라도 시간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머무는 동안 두 번 이용했는데, 오후 4시대와 다음 날 오전 8시대 분위기가 가장 편했다. 저녁 7시 이후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몰렸다. 저녁을 먹고 들어온 투숙객들이 한꺼번에 내려오는 시간이라, 작은 풀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 가장 한적했던 시간: 체크인 직후인 오후 4시부터 5시 사이
- 두 번째로 좋았던 시간: 조식 전 오전 8시 전후
- 조금 붐볐던 시간: 저녁 7시부터 8시 30분 사이
- 사진 찍기 좋은 시간: 해가 낮게 기우는 오후 5시 30분쯤
유명한 호텔수영장은 보통 전망이 좋고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대신 그만큼 수영장 안에서도 줄을 서는 느낌이 날 때가 있다. 이곳은 반대였다. 완벽한 사진 한 장을 얻는 곳이라기보다,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물가에 앉아 동네 소리를 듣는 쪽에 가까웠다. 옆 골목에서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아래층 카페에서 얼음 갈리는 소리, 항구 쪽에서 들리는 짧은 경적 같은 것들. 그런 소리들이 이상하게 여행의 밀도를 높였다.
가는 길이 평범해서 더 좋았다
호텔까지 가는 길도 인상적이었다. 부산역에서 버스를 타면 25분 정도 걸렸고, 정류장에서 내려 골목 안으로 6분쯤 걸었다. 큰 캐리어를 끌고 가기엔 보도블록이 조금 불편했지만, 길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관광지 앞 대로변이 아니라 세탁소, 미용실, 오래된 분식집이 이어지는 동네 길이었다.
나는 이런 길을 좋아한다. 목적지가 호텔이어도,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하루가 보이면 여행이 덜 뜬다. 호텔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고, 맞은편 작은 빵집에서 단팥빵 하나를 샀다. 가격은 1,800원. 객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 수영 후에 먹었는데, 이상하게 그 빵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 여행에서 꼭 비싼 식사만 오래 남는 건 아니었다.
호텔수영장을 고를 때 내가 보는 것들
사람 적은 호텔수영장을 찾을 때는 사진보다 운영 정보를 먼저 본다. 수영장 사진이 너무 많고, 인스타그램 위치 태그가 활발한 곳은 아무래도 붐빌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객실 후기 사이에 수영장 이야기가 조용히 섞여 있는 곳은 의외로 한산한 경우가 있었다.
- 객실 수가 너무 많은 대형 호텔은 피한다
- 수영장 이용 시간이 길면 한 시간대에 사람이 덜 몰린다
- 예약제나 회차제가 있으면 붐비는 정도를 예상하기 쉽다
- 주말보다 평일, 방학보다 비수기가 확실히 편하다
- 수영장 사진보다 최근 후기의 시간대 언급을 본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수영모 필수는 아니었고, 객실 슬리퍼 착용은 제한됐다. 타월은 1인 1장 제공, 추가는 유료였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정보가 여행의 피로를 꽤 줄인다. 특히 작은 호텔수영장은 직원이 계속 상주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이용 규칙을 미리 확인해두면 마음이 편하다.
화려하지 않아서 남는 장면
밤이 되자 수영장 물빛이 조금 짙어졌다.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는 대신, 동네 건물의 창문 불빛이 물 위에 작게 흔들렸다. 누군가는 그 장면을 밋밋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바다가 정면으로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고층 전망도 아니고, 풀사이드 바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근데 나는 그 정도의 평범함이 좋았다. 수영을 오래 하지도 않았다. 20분쯤 물에 있다가 나와서 선베드에 앉아 발만 말렸다. 젖은 머리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에 올라가니, 창밖으로 동네 불빛이 낮게 깔려 있었다. 그날의 호텔수영장은 여행지의 대표 장면이라기보다, 하루 중 잠깐 생긴 조용한 여백 같았다.
유명한 곳을 일부러 피한다고 해서 여행이 작아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덜 알려진 공간에서는 내 속도대로 머물 수 있다. 다음에도 호텔수영장을 고른다면, 나는 전망 사진이 가장 멋진 곳보다 물가에 앉아 10분쯤 아무 말 없이 있을 수 있는 곳을 먼저 찾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