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부여행에서 유명한 곳 대신 동네 골목만 따라가봤더니

얼마 전 미서부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오래 남은 장면은 그랜드캐니언 전망대보다 작은 동네 슈퍼 앞 벤치였다. 해가 조금 기울던 오후 5시쯤, 동네 사람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지나가고 낡은 픽업트럭이 조용히 골목을 빠져나가던 풍경이 꽤 선명했다. 유명한 장소가 주는 압도감도 좋지만, 저는 여행지의 일상이 보일 때 더 오래 머무르게 된다.
이번 여행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 캘리포니아 안쪽 마을과 해안, 그리고 사막 가장자리까지 느리게 움직였다. 하루 이동 거리는 되도록 180km 안팎으로 잡았다. 미국 서부는 지도에서 보면 가까워 보여도 실제로는 한두 시간 운전이 금방 사라지는 곳이라, 욕심을 줄이는 게 오히려 더 많이 보는 방법이었다.
관광지보다 먼저 동네를 걸었다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면 대부분 할리우드나 산타모니카부터 떠올린다. 저도 예전엔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항에서 차를 빌린 뒤 바로 하이랜드파크 쪽으로 갔다. 다운타운에서 차로 20~30분 정도 걸리는 동네인데, 화려하다기보다 오래된 간판과 작은 카페, 중고 레코드숍이 이어지는 곳이다.
피게로아 스트리트를 따라 1.5km쯤 걸었는데, 평일 오전이라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카페 안에는 노트북을 펴고 일하는 사람, 유모차를 밀고 들어온 동네 주민, 자전거 헬멧을 든 손님이 섞여 있었다. 솔직히 사진으로 크게 남길 만한 장면은 많지 않다. 대신 여행 중에 잠깐 그 동네 사람처럼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하이랜드파크에서 좋았던 점
- 주차는 큰길보다 한 블록 안쪽 주택가가 편했다. 단, 표지판에 적힌 청소 시간은 꼭 확인해야 한다.
-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가 가장 조용했다. 점심 이후에는 차가 조금 많아졌다.
- 빈티지숍 가격은 저렴하진 않았지만,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오하이는 작은 마을의 속도로 걷는 곳이었다
LA에서 북서쪽으로 약 130km, 차로 2시간 정도 달리면 오하이(Ojai)가 나온다. 산타바버라보다 덜 알려져 있고, 바다 대신 낮은 산과 감귤나무가 있는 마을이다. 사실 큰 기대 없이 들렀는데, 이번 미서부여행에서 가장 오래 생각난 곳이 여기였다.
오하이 중심가는 길지 않다. 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그런데 그 짧은 거리 안에 작은 서점, 동네 식료품점, 오래된 우체국, 벤치가 적당히 놓여 있다. 관광지 특유의 들뜬 소리보다 바람 소리와 차 문 닫히는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오후 4시쯤 리비 파크 근처에 앉아 있었는데,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고 어른들은 개를 데리고 산책했다. 여행자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의 없는 동네였다. 근데 그게 참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여행 일정 안에 들어와도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해안도로에서는 유명 전망대보다 작은 항구가 편했다
캘리포니아 해안도로를 달릴 때 많은 사람이 빅서의 유명 전망대를 목표로 잡는다. 물론 빅서의 풍경은 멋지다. 다만 주말에는 전망대마다 차가 몰리고, 잠깐 내려 사진을 찍는 흐름에 휩쓸리기 쉽다. 저는 이번에 모로베이(Morro Bay)에서 하루를 묵었다.
모로베이는 샌루이스오비스포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작은 항구 마을이다. 바다 위로 커다란 모로 록이 보이고, 항구 쪽에는 해산물 식당과 작은 상점이 이어진다. 유명한 리조트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방파제 근처에 앉아 바다사자 울음소리를 듣는 시간이 더 자연스럽다.
저녁 6시 무렵 항구 뒤편 골목을 걸었는데, 손님이 많은 식당 옆에도 한산한 골목이 금방 나왔다. 창문 너머로 불 켜진 주방이 보이고, 누군가는 가게 앞 의자를 접고 있었다. 미서부여행에서 바다는 대개 웅장한 풍경으로 기억되지만, 이곳에서는 하루 일을 끝내는 항구의 표정으로 남았다.
모로베이에서 머문 방식
- 숙소는 항구 바로 앞보다 두세 블록 뒤쪽이 조용했다.
- 아침 7시대에는 산책하는 주민이 대부분이라 사진 찍기보다 걷기에 좋았다.
- 저녁 식사는 인기 식당보다 현지 손님이 천천히 들어가는 작은 가게가 만족스러웠다.
사막은 유명 국립공원 안보다 바깥 마을이 더 조용했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은 이미 꽤 유명하다. 입구에는 차가 줄을 서고, 해 질 무렵 전망 포인트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래도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저는 공원 안에서 오래 있기보다 유카밸리와 파이오니어타운 사이의 길을 천천히 달렸다.
유카밸리의 작은 마트에서 물과 과일을 샀다. 계산대 직원이 어디서 왔냐고 묻고, 저는 한국에서 왔다고 답했다. 그 짧은 대화가 이상하게 편했다. 여행지에서 로컬을 느낀다는 건 거창한 체험이 아니라 이런 순간일 때가 많다. 누군가의 생활 공간에 잠깐 들어갔다가 조용히 나오는 일.
파이오니어타운은 서부 영화 세트처럼 보이는 거리로 알려져 있지만, 평일 낮에는 꽤 한적했다. 200m 남짓한 길을 걷는 동안 들리는 건 모래 밟는 소리와 바람뿐이었다. 다만 여름 낮에는 기온이 35도를 훌쩍 넘기니 오래 걷기 어렵다. 물은 차에 두 병 이상 넣어두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이동보다 머무는 시간을 넉넉히 잡았다
미서부여행을 계획하면 욕심이 생긴다. LA,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 그랜드캐니언까지 한 번에 넣고 싶어진다. 그런데 로컬한 장소를 좋아한다면 이동 거리부터 줄이는 편이 낫다. 하루에 400km를 달리면 동네 골목을 걸을 힘이 거의 남지 않는다.
저는 이번에 하루 한 동네만 제대로 보는 날을 몇 번 넣었다. 아침에는 근처 카페에 가고, 점심 전에는 동네 서점이나 시장을 걷고, 오후에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겉으로는 별일 없는 일정처럼 보이지만, 이런 날들이 여행의 밀도를 높여줬다.
조용한 미서부여행을 위해 챙긴 기준
- 평일 오전에 동네 산책을 넣었다. 주말보다 확실히 사람이 적었다.
- 유명 전망대는 해 뜬 직후나 해 지기 2시간 전을 피했다.
- 숙소는 중심 관광지보다 한두 동네 떨어진 곳을 골랐다.
- 식사는 평점만 보지 않고, 주변에 실제 주거지가 있는지 함께 봤다.
이번 미서부여행은 거대한 풍경을 따라가는 여행이라기보다, 큰 풍경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생활을 줍는 시간에 가까웠다. 누군가에게는 심심한 일정일 수 있다. 하지만 저는 하이랜드파크의 오전 햇빛, 오하이 공원의 벤치, 모로베이 항구의 저녁 공기가 오래 남았다. 유명한 곳을 조금 덜어내면, 그 자리에 동네의 속도가 들어온다. 저는 다음에도 아마 그런 길을 먼저 고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