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유명한 곳을 비켜 걸어봤더니, 조용한 동네가 더 오래 남았다

얼마 전 LA에 다시 갔을 때, 이상하게 할리우드 사인보다 동네 버스 정류장 옆 작은 카페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관광지는 분명 화려한데, 그만큼 사람도 많고 사진 찍는 속도도 빨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유명한 코스를 조금 비켜 갔습니다. 차로 훑고 지나가는 LA 말고, 걸어서 천천히 만나는 LA를 보고 싶었습니다.
LA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산타모니카, 베니스비치, 그리피스 천문대가 먼저 떠오릅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내다 보면 이 도시는 큰 명소보다 동네의 결이 더 선명합니다. 어느 골목은 멕시코 시장 냄새가 나고, 어느 공원은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조용히 샌드위치를 먹고, 또 어느 언덕길은 차 소리보다 바람 소리가 먼저 들립니다.
차이나타운 뒤쪽, LA State Historic Park를 천천히 걸었다
LA State Historic Park는 다운타운 바로 위, 차이나타운 역 근처에 있습니다. 32에이커 정도 되는 넓은 공원인데, 막상 가보면 관광지 특유의 붐비는 느낌은 덜합니다. 잔디밭이 길게 펼쳐져 있고, 한쪽으로는 다운타운 고층 건물이 보입니다. 그 대비가 꽤 LA답습니다. 도시가 가까운데도, 발밑은 생각보다 느슨합니다.
저는 평일 오전 10시쯤 갔습니다. 조깅하는 사람 몇 명, 강아지 산책시키는 동네 주민, 벤치에 앉아 통화하는 사람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사실 여기서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차이나타운에서 커피를 하나 사서 공원 안쪽 길을 따라 걷고, 벤치에 앉아 철길 쪽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가는 길과 작은 팁
- Metro A Line Chinatown 역에서 걸어서 5분 안팎입니다.
- 차이나타운 중심가보다 공원 북쪽 산책로가 더 한적했습니다.
- 그늘이 많지는 않아서 한낮보다는 오전이나 해 질 무렵이 편합니다.
케네스 한 공원에서 본 LA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Kenneth Hahn State Recreation Area는 LA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여행자 동선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이곳은 약 401에이커 규모의 큰 공원이고, 언덕을 조금 오르면 다운타운, 할리우드 사인, 산타모니카 쪽 하늘까지 한 번에 들어옵니다. 그리피스 천문대 전망도 좋지만, 거기는 늘 사람이 많습니다. 케네스 한은 훨씬 생활권에 가까운 공원입니다.
제가 걸은 코스는 길지 않았습니다. 주차장 근처에서 시작해 호수 쪽을 지나 전망 포인트까지 천천히 왕복했습니다. 1시간 20분 정도 걸렸고, 중간에 사진 찍고 물 마신 시간까지 포함한 겁니다. 등산이라기보다 언덕 산책에 가깝습니다. 솔직히 LA에서 이런 조용한 초록을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재밌었던 건 풍경보다 사람들의 분위기였습니다. 돗자리 펴고 가족끼리 점심 먹는 사람, 혼자 이어폰 끼고 걷는 사람, 운동복 차림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 여행자보다 주민이 많아서 공간이 덜 소모된 느낌이었습니다. 유명 전망대에서 느끼는 ‘봐야 한다’는 압박이 없었습니다.
엔시노의 작은 역사 공원, Los Encinos에서 쉬어갔다
LA가 너무 넓게 느껴질 때는 샌퍼낸도 밸리 쪽으로 올라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Encino에 있는 Los Encinos State Historic Park는 크지 않은 공원입니다. 규모는 약 4.7에이커 정도라서 일부러 긴 시간을 비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작음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오래된 어도비 건물, 작은 연못, 나무 그늘이 있고 주변은 완전히 동네입니다. 유명한 포토스팟이라기보다, 산책하다가 우연히 들어온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근처 Ventura Boulevard에서 점심을 먹고, 소화시킬 겸 들렀습니다. 30분이면 한 바퀴를 천천히 볼 수 있고, 벤치에 앉으면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납니다.
이런 장소는 기대를 크게 가져가면 심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LA여행 중 하루쯤은 그런 심심함이 필요합니다. 계속 운전하고, 예약하고, 줄 서다 보면 여행이 아니라 과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요.
유명 해변 대신 동네 길을 고르면 보이는 것들
산타모니카 해변은 아름답지만 늘 바쁩니다. 그래서 저는 바다를 꼭 봐야 하는 날이 아니라면 해변 자체보다 그 주변 동네를 조금 걸었습니다. 예를 들면 Culver City의 조용한 주택가나, Larchmont Village의 짧은 상점 거리 같은 곳입니다. 대단한 명소는 아니지만, LA 사람들이 실제로 커피를 사고 빵을 고르고 장을 보는 리듬이 보입니다.
Larchmont Village는 길이가 길지 않습니다.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중심부를 지나갑니다. 그런데 토요일 오전을 피하고 평일 낮에 가면 꽤 차분합니다. 큰 쇼핑몰보다 작은 서점, 베이커리, 오래된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행에서 이런 길은 사진으로는 덜 화려해도, 나중에 떠올릴 때 이상하게 선명합니다.
제가 피한 시간대
-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의 브런치 밀집 시간
- 해 질 무렵 그리피스 천문대 주변 도로
- 일요일 오후 산타모니카 피어 근처
LA를 조용하게 여행하려면 속도를 낮춰야 했다
LA는 차가 있어야 편한 도시라는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동을 차로만 하면 동네의 질감이 잘 안 남습니다. 저는 하루에 장소를 2곳 이상 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오전에는 공원 하나, 오후에는 동네 거리 하나. 이 정도가 가장 편했습니다. 이동 시간이 길어져도 마음이 덜 급했습니다.
특히 LA여행이 처음이 아니라면, 유명한 이름을 하나 덜어내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 빈자리에 동네 공원, 작은 식당, 버스 창밖 풍경이 들어옵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장소보다, 아무 계획 없이 앉아 있던 벤치가 더 오래 남는 날도 있습니다.
제 기준에서 LA의 매력은 화려한 표면보다 그 아래의 일상에 있었습니다. 관광객이 잠깐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누군가는 장을 보고 운동하고 늦은 점심을 먹는 도시. 그 틈을 조용히 빌려 걷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저는 또 유명한 곳을 하나쯤 비워두고, 지도에서 별표가 적은 동네를 먼저 눌러볼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