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 골목을 일부러 천천히 걸어봤더니 보인 것들

얼마 전 하코다테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전망대의 야경보다 아침에 문을 여는 동네 빵집 앞 냄새였다. 유명한 곳이 싫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람이 몰리는 방향에서 반 걸음만 비켜서면, 여행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활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하코다테는 그런 순간이 꽤 자주 찾아오는 도시였다.
전차를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도시
하코다테는 여행 동선이 단순한 편이다. JR 하코다테역을 기준으로 전차를 타면 주지가이, 야치가시라, 유노카와 쪽으로 천천히 퍼져 나간다. 전차가 빠르진 않다. 그런데 그 느림이 이 도시와 잘 맞는다. 차창 밖으로 낮은 건물, 오래된 간판, 눈에 젖은 도로 같은 것들이 오래 남는다.
저는 첫날 일부러 관광지 이름을 많이 찍어두지 않았다. 역 앞에서 전차를 타고 주지가이에 내려, 모토마치 언덕으로 곧장 올라가지 않고 옆 골목으로 빠졌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큰길에서 3분만 벗어나도 소리가 확 줄었다. 바람은 세고, 집 앞에는 작은 화분이 놓여 있고, 경사진 길 아래로 항구가 살짝 보였다. 하코다테여행에서 의외로 중요한 건 목적지보다 방향이었다.
- 전차 이동은 짧게 끊어 타는 편이 좋았다.
- 주지가이 근처는 골목 산책을 시작하기 편했다.
- 바닷바람이 강해서 얇은 겉옷보다 바람막이가 더 유용했다.
모토마치의 유명한 언덕 옆, 조용한 길
모토마치는 하코다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동네 중 하나다. 교회와 언덕, 항구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서 당연히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유명한 언덕길 바로 옆으로 난 작은 길들은 분위기가 다르다.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신 우체통 앞에 잠깐 멈춘 주민이나 천천히 내려가는 자전거가 보인다.
제가 좋았던 건 하치만자카 자체보다 그 주변의 옆길이었다. 하치만자카는 바다로 길이 떨어지는 장면이 또렷해서 인상적이지만, 조금만 돌아가면 더 낮고 조용한 경사가 이어진다. 눈이 남아 있던 날이라 발밑이 미끄러웠고, 걷는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그 느린 속도 덕분에 벽돌 담장의 색, 창문 안쪽의 노란 조명, 멀리서 들리는 전차 소리 같은 것들이 보였다.
사람이 적은 시간대
오전 9시 전후가 가장 편했다. 단체 여행객이 움직이기 전이라 길이 비어 있었고, 카페들도 아직 조용했다. 점심 이후에는 언덕 위쪽으로 사람이 늘어난다.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동네를 느끼고 싶다면 오전에 걷고, 오후에는 항구 쪽으로 내려오는 흐름이 괜찮았다.
아침시장은 짧게, 뒷골목은 길게
하코다테 아침시장은 유명하다. 사실 사람도 꽤 있다. 그래서 저는 시장 안쪽을 오래 머물기보다, 이른 시간에 한 바퀴만 돌고 뒷길로 빠졌다. 활기 자체는 좋았다. 게와 오징어가 놓인 좌판, 가게 앞에서 손님을 부르는 목소리, 뜨거운 국물 냄새가 섞여 있었다. 다만 제가 좋아하는 하코다테는 그 북적임 바로 뒤편에 있었다.
시장 뒤쪽으로 걸으면 갑자기 생활의 온도가 내려간다. 작은 식당 앞에 메뉴판이 기대어 있고, 출근하는 사람이 빠르게 지나가고, 오래된 건물 1층에서 커피 향이 흘러나온다. 관광객이 몰리는 시장 입구와 비교하면 훨씬 담백하다. 저는 그 근처 작은 가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는데, 메뉴가 특별해서라기보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전차와 흐린 하늘이 잘 어울려서 오래 앉아 있었다.
- 아침시장은 너무 늦게 가면 식사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 시장 바로 뒤편 골목은 조용한 식당과 카페를 찾기 좋았다.
- 해산물 덮밥이 부담스럽다면 간단한 구이 정식도 충분했다.
야치가시라 쪽으로 가면 하코다테가 더 낮아진다
하코다테여행에서 가장 마음이 놓였던 동네는 야치가시라 쪽이었다. 전차 종점 가까이 갈수록 관광지의 반짝임은 줄고, 동네의 표정이 더 진해진다. 길은 조용하고, 주택 사이로 작은 절과 공원이 이어진다. 특별한 입장권이 필요한 장소보다, 그냥 걷다가 벤치에 앉는 시간이 잘 맞는 동네였다.
하코다테 공원 주변도 좋았다. 봄이면 벚꽃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사람이 적은 계절에 가면 산책로의 결이 더 잘 보인다. 오래된 놀이기구가 있는 구역은 살짝 낡았고, 그 낡음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새것으로 단장한 관광지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뒤의 운동장처럼, 조금 비어 있어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풍경이었다.
동선은 짧게 잡는 편이 낫다
야치가시라까지 갔다면 하루에 너무 많은 곳을 넣지 않는 게 좋았다. 저는 오전에 모토마치를 걷고, 점심 뒤에 전차로 야치가시라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공원 주변을 천천히 돌다가 해 질 무렵 역 쪽으로 돌아왔다. 지도상으로는 더 갈 수 있어 보여도, 하코다테는 바람과 경사가 체력을 은근히 가져간다.
바다를 보려면 유명 전망대만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하코다테산 야경은 분명 아름답다. 다만 사람이 많은 시간대에는 감상보다 이동이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저는 다음 날 오모리 해안 쪽을 걸었다. 관광 안내에서 크게 앞세우는 장소는 아니지만, 바다와 도시가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느낌이 좋았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 파도 소리, 낮은 건물 사이의 생활감이 섞였다.
오모리 해안은 오래 머물 관광지는 아닐 수 있다. 근데 산책하기엔 충분했다. 바다를 정면으로 크게 보는 장소라기보다, 도시 옆에 바다가 계속 따라오는 길에 가깝다. 그래서 더 로컬하게 느껴졌다. 바다 앞에서 대단한 장면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곳. 그냥 걷다가 편의점 커피를 들고 잠깐 멈추면 되는 곳이었다.
- 바닷가 산책은 바람이 약한 낮 시간이 편했다.
- 전망보다 분위기를 원한다면 오모리 해안 쪽이 담백했다.
- 겨울과 초봄에는 손이 시릴 만큼 바람이 차다.
하코다테는 크게 욕심내지 않을수록 좋아지는 도시였다. 유명한 야경과 시장을 모두 지워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사이사이에 동네 길을 끼워 넣으면 여행의 밀도가 달라진다. 전차 한두 정거장을 그냥 걸어보고, 사람이 몰리는 언덕에서 옆길로 빠지고, 밥을 먹은 뒤 바로 다음 장소로 가지 않고 창밖을 조금 더 보는 식으로. 제게 하코다테여행은 그런 느린 장면들이 쌓인 기억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