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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봤더니, 유명한 바다보다 오래 남은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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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봤더니, 유명한 바다보다 오래 남은 장면들

얼마 전 강원도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또렷하게 남은 건 파도 소리 큰 해변이 아니라 조용한 골목에서 맡았던 빨래 냄새와 작은 분식집의 김 오르는 창문이었다.

강원도 하면 보통 강릉 바다, 속초 중앙시장, 양양 서핑 해변을 먼저 떠올린다. 나도 예전엔 그 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몇 번 다녀보니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는 사진은 많이 남아도, 그 동네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일부러 한 박자 늦게 걷고, 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 동네와 관광 안내판에 크게 적히지 않은 길을 골랐다.

강릉 교동의 안쪽 골목, 커피거리 바깥의 시간

강릉에 가면 바다 앞 카페부터 찾는 사람이 많다. 솔직히 그 풍경도 좋다. 그런데 주말 오후 안목해변은 앉을 자리보다 기다리는 줄이 먼저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강릉역에서 택시를 타지 않고, 교동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역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아파트 단지와 오래된 주택, 작은 식당들이 섞인 길이 나온다.

여기서는 관광지 특유의 들뜬 소리보다 생활음이 먼저 들린다. 미용실 문 여닫히는 소리,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플라스틱 통을 닫는 소리, 초등학생들이 학원 가방을 메고 뛰어가는 소리 같은 것들. 유명한 장소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강릉이 바다만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라는 걸 조용히 보여주는 동네다.

걸어보니 좋았던 길

  • 강릉역에서 교동택지 방향으로 걸으며 작은 식당 간판을 보는 길
  •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의 한산한 골목
  • 카페보다 동네 빵집이나 분식집에 잠깐 앉아 쉬는 동선

근데 이 길은 특별한 볼거리를 기대하고 가면 심심할 수 있다. 대신 여행자가 동네 안에 잠깐 섞이는 느낌이 있다. 나는 떡볶이 한 접시를 시켜놓고 창밖을 보다가, 바다를 보러 왔다는 사실을 잠깐 잊었다.

동해 묵호의 언덕길, 전망보다 골목이 먼저였다

동해 묵호는 벽화마을과 논골담길로 알려져 있지만, 이른 오전에 가면 생각보다 차분하다. 특히 평일 오전 9시쯤에는 가게 문이 다 열리기 전이라 골목의 빈틈이 잘 보인다. 묵호역에서 걸어가면 오르막이 꽤 있다. 지도상 거리는 길지 않아도 숨이 조금 찬다.

언덕 위로 올라갈수록 바다가 넓게 보이는데, 사실 내 눈에 더 오래 남은 건 집 앞에 놓인 화분과 낡은 대문이었다. 관광지로 꾸민 벽화보다, 그 사이사이에 남아 있는 생활의 흔적이 더 좋았다. 어느 집 담장 아래에는 고무대야가 엎어져 있었고, 골목 모퉁이에는 바람에 마른 수건이 걸려 있었다.

묵호에서는 빨리 올라가서 전망만 보고 내려오면 아깝다. 1시간 정도 여유를 잡고, 계단 사이로 난 옆길을 천천히 돌아보는 편이 낫다. 단, 실제 주민들이 사는 곳이라 대문 안쪽을 찍거나 큰 소리로 떠드는 건 피하는 게 좋다. 여행지이기 전에 누군가의 평일이라는 걸 잊지 않게 되는 곳이었다.

정선 아우라지 근처, 물소리와 빈 의자가 있는 오후

강원도여행에서 산골 쪽을 좋아한다면 정선은 꽤 오래 머물 만한 곳이다. 정선읍내 장날도 좋지만, 사람이 적은 시간을 원한다면 아우라지 주변을 평일 오후에 걸어보는 걸 좋아한다. 강릉이나 속초에 비해 이동은 조금 불편하다.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서 시간을 잘 맞춰야 하고, 차가 있으면 훨씬 편하다.

아우라지에 도착하면 큰 자극은 없다. 화려한 상점가도 아니고, 계속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조형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대신 물길이 천천히 흐르고, 강가에 앉아 있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다. 나는 근처 벤치에 30분쯤 앉아 있었는데, 그동안 지나간 사람은 다섯 명 남짓이었다.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번갈아 들렸고, 멀리서 트럭 지나가는 소리가 작게 섞였다.

이런 사람에게 잘 맞았다

  • 일정을 빽빽하게 채우는 여행보다 빈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
  • 사진 명소보다 앉아 있을 장소를 먼저 찾는 사람
  • 차분한 강원도여행 코스를 원하는 사람

다만 식당과 카페 선택지는 많지 않다. 늦은 오후에는 문을 닫은 곳도 보였다. 물이나 간단한 간식은 미리 챙기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이런 불편함까지 포함해서, 아우라지는 도시의 속도를 잠깐 낮춰주는 장소에 가깝다.

고성 가진항, 작아서 더 선명한 바닷가

고성 쪽 바다는 속초나 강릉보다 훨씬 조용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중 가진항은 규모가 크지 않아 걷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방파제 쪽으로 걸으면 10분 안에 항구의 대략적인 분위기가 들어온다. 큰 리조트나 번쩍이는 상권보다는 배, 그물, 낮은 식당 건물이 먼저 보인다.

내가 갔던 날은 바람이 조금 세서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혔다. 관광객은 드문드문 있었고, 낚시하는 사람 몇 명이 말없이 줄을 던지고 있었다. 유명 해변처럼 돗자리를 펴고 오래 머무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짧게 걸어도 바닷가 마을의 밀도가 느껴진다.

가진항의 장점은 과하게 꾸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대로 말하면 특별한 시설을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강원도여행 중 하루쯤은 이런 작은 항구에 들러도 좋다. 바다를 소비하듯 보는 게 아니라, 바다 곁에서 사는 동네를 잠깐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사람 적은 강원도여행을 할 때 챙긴 것들

한적한 로컬 장소를 다니다 보면 편의성은 조금 내려놓아야 한다. 유명 관광지처럼 안내판이 촘촘하지 않고, 식당 영업시간도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를 미리 확인한다. 이건 여행의 낭만을 줄이기보다, 현장에서 허둥대는 시간을 줄여준다.

  • 버스 이동이라면 막차 시간을 먼저 확인하기
  • 평일 오전이나 점심 이후 시간을 활용하기
  • 주민 생활 공간에서는 사진보다 걷는 감각에 집중하기
  • 작은 가게는 브레이크 타임과 휴무일이 잦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 비 오는 날에는 산골길과 언덕길 이동 시간을 넉넉히 잡기

사실 사람 적은 장소를 찾는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 명소를 찾아내는 일만은 아니다. 이미 누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일에 가깝다. 강원도의 바다는 여전히 좋고, 유명한 시장의 활기도 분명 매력적이다. 다만 여행이 늘 붐비는 장면으로만 채워질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이번 강원도여행에서 내가 오래 기억하는 순간은 대단한 풍경 앞이 아니었다. 교동 골목의 낮은 간판, 묵호 언덕의 바람, 정선 강가의 빈 의자, 가진항의 젖은 방파제였다. 그런 장면들은 조용해서 처음엔 지나치기 쉽지만, 돌아와 생각하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다음에도 나는 유명한 목적지 바로 옆의 생활권을 조금 더 걸어볼 생각이다.

강원도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봤더니, 유명한 바다보다 오래 남은 장면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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