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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골목을 천천히 걸어봤더니 관광지보다 오래 남았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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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골목을 천천히 걸어봤더니 관광지보다 오래 남았던 순간들

시장 앞 의자에 앉아 있던 아침

얼마 전 베트남을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사진첩에 제일 많이 남은 건 유명한 사원이나 전망대가 아니었다. 낡은 플라스틱 의자, 오토바이가 지나간 뒤에 남는 먼지, 새벽 시장에서 고수를 다듬던 아주머니의 손 같은 장면들이었다. 베트남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보통 하노이 호안끼엠, 다낭 미케비치, 호찌민 벤탄시장처럼 이름난 곳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조금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여행의 속도가 확 달라진다.

나는 이번에 관광지 목록을 줄이고, 숙소 주변 반경 1~2km 안에서 많이 걸었다. 하루 평균 1만 5천 보 정도였고, 택시는 정말 필요할 때만 탔다. 사실 베트남은 걷기 좋은 도시라고만 말하긴 어렵다. 인도가 끊기고, 오토바이가 갑자기 옆을 스치고, 횡단보도 앞에서도 눈치를 봐야 한다. 근데 그 불편함을 조금 받아들이면 골목의 표정이 꽤 선명하게 보인다.

유명한 카페보다 동네 카페가 좋았던 이유

하노이에서 유명한 에그커피 카페도 가봤다. 맛있었고, 사진도 잘 나왔다. 그런데 오래 앉아 있고 싶었던 곳은 숙소 뒤편에 있던 작은 카페였다. 간판은 거의 바랜 초록색이었고, 메뉴판에는 커피가 25,000동에서 40,000동 정도로 적혀 있었다. 우리 돈으로 대략 1,300원에서 2,100원 사이. 관광객은 나 말고는 없었고,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 아침 출근 전에 들르는 분위기였다.

그 카페에서는 아이스 블랙커피를 시켰다. 베트남 커피 특유의 진한 쓴맛이 먼저 오고, 얼음이 조금 녹으면서 천천히 부드러워졌다. 옆 테이블에서는 중년 남자 둘이 신문을 펼쳐놓고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누군가는 오토바이 헬멧을 의자에 걸어두고 10분쯤 있다가 다시 나갔다. 여행자가 일부러 끼어들 필요 없는 일상. 나는 그런 장면이 좋았다.

  • 관광지 카페: 사진 찍기 좋고 영어 메뉴가 많지만 대체로 사람이 많다.
  • 동네 카페: 메뉴는 단순하지만 가격이 낮고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가 덜 보인다.
  • 골목 카페를 고를 때는 손님이 2~3팀 정도 있는 곳이 가장 편했다.

골목 안 시장은 여행자의 속도를 낮춘다

베트남여행에서 로컬 시장은 꼭 한 번은 들어가볼 만하다. 다만 유명 시장 말고, 아침 7시에서 9시 사이에 열리는 동네 시장이 더 좋았다. 관광객을 부르는 소리보다 생선 손질하는 소리, 과일을 저울에 올리는 소리, 국수 냄비에서 김이 올라오는 소리가 먼저 들린다. 가격표가 없는 곳도 많아서 처음엔 조금 망설여지지만, 바나나 한 송이나 망고 한두 개 정도는 손짓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호찌민의 한 동네 시장에서는 작은 쌀국수 가게에 앉았다. 테이블은 네 개뿐이었고, 의자는 낮았다. 국수 한 그릇은 45,000동이었다. 관광지 식당보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국물은 맑고, 허브는 넉넉했다. 옆자리 할머니가 라임을 짜 넣는 걸 보고 나도 따라 했다. 그런 작은 따라 함이 여행지에서는 은근히 기억에 남는다. 누구에게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곳의 리듬을 조금 빌려 쓰는 기분이 든다.

조용한 장소를 찾을 때 내가 보는 것들

사람 적은 로컬 장소를 찾을 때는 지도 평점만 믿지 않는다. 평점 4.8점인 곳은 이미 많이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리뷰가 20개 미만인데 사진이 자연스럽고, 현지어 리뷰가 섞여 있는 곳을 본다. 또 큰 도로에서 한 블록 이상 들어간 위치인지도 확인한다. 베트남 도시는 큰길과 골목의 분위기 차이가 꽤 크다. 큰길은 경적과 불빛이 많고, 골목은 빨래와 작은 화분, 아이들 목소리가 있다.

구글 지도에서 ‘coffee’, ‘bun’, ‘com tam’처럼 영어와 현지 음식 이름을 섞어 검색하면 관광객용 장소와 동네 장소가 함께 뜬다. 그중 사진에 메뉴판보다 손님 얼굴이나 가게 앞 오토바이가 많이 보이면 생활권 가게일 때가 많았다. 물론 실패도 있다. 너무 현지인 중심이라 주문이 어려운 곳도 있었고, 위생이 마음에 걸려 그냥 나온 곳도 있었다. 솔직히 이런 시행착오까지 포함해야 로컬 여행이 현실적이다.

관광지를 아예 피하자는 뜻은 아니다

베트남의 유명 관광지는 그 자체로 볼 이유가 있다. 하노이 구시가지의 복잡한 거리, 호이안의 노란 벽, 다낭 해변의 긴 수평선은 분명 매력적이다. 다만 하루 일정을 전부 명소로 채우면 도시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오전에는 유명한 곳 한 군데만 보고, 오후에는 숙소 근처 동네를 걷는 식으로 나눴다. 이렇게 하니 체력도 덜 닳고, 여행이 소비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줄었다.

예를 들어 호이안에서는 올드타운 중심부를 오전 8시 전에 걸었다. 단체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이라 셔터를 올리는 상점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더 잘 보였다. 낮에는 사람이 많아져서 강변에서 조금 떨어진 주거 골목으로 빠졌다. 벽에 기대어 말리는 우산, 문 앞에 놓인 작은 제단, 낮잠 자는 가게 주인. 그쪽이 내게는 더 오래 남았다.

  • 명소는 이른 오전이나 해 질 무렵에 짧게 본다.
  • 식사는 중심지에서 10분 이상 걸어 나간 곳에서 찾는다.
  • 하루에 한 번은 목적지 없이 30분 정도 걷는다.
  • 너무 어두운 골목이나 사람이 전혀 없는 길은 피한다.

베트남여행이 조용해지는 순간

베트남은 시끄러운 나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오토바이 경적, 시장의 목소리, 공사 소리,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가게 불빛.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안에 조용한 시간이 숨어 있다. 이른 아침 카페에서 얼음이 컵에 부딪히는 소리, 비 온 뒤 골목 바닥에 고인 물, 낮 더위를 피해 문턱에 앉아 있는 사람들. 그런 장면은 일부러 찾아간 명소보다 덜 선명하게 시작하지만, 돌아와서는 더 자주 떠오른다.

사람 적은 베트남여행을 원한다면 일정을 비워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에 꼭 봐야 할 곳을 2곳 이하로 줄이고, 동네 카페나 작은 시장을 끼워 넣으면 도시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입장료가 있는 장소보다 25,000동짜리 커피 한 잔이 그날의 중심이 될 때도 있다. 나는 그런 여행이 좋다. 멀리 왔지만, 잠깐 그 동네의 평범한 오전을 빌려 앉아 있는 기분. 베트남은 그렇게 천천히 걸을수록 덜 관광지 같고, 더 사람 사는 곳처럼 다가왔다.

베트남 골목을 천천히 걸어봤더니 관광지보다 오래 남았던 순간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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