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여행에서 해변보다 골목을 오래 걸어봤더니 남은 장면들

비 오는 오후, 푸켓타운 골목에서 시작한 여행
얼마 전 푸켓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상하게 바다보다 골목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공항에서 숙소로 바로 내려가면 빠통이나 까론 같은 해변 이름이 먼저 보이지만, 나는 첫날 짐을 풀자마자 푸켓타운 쪽으로 걸었다. 낮 3시쯤이었고, 비가 막 그친 뒤라 도로에 색이 진하게 올라와 있었다.
푸켓타운 올드타운은 유명하긴 하지만, 탈랑 로드 한복판만 벗어나면 분위기가 꽤 달라진다. 사진 찍는 사람이 몰리는 벽화 앞을 지나 디북 로드와 크라비 로드 뒤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카페보다 세탁소와 작은 식당이 먼저 보인다. 시노 포르투기즈 건물의 파스텔색 외벽도 좋지만, 사실 더 좋았던 건 문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와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였다.
나는 한 시간 반 정도를 거의 목적지 없이 걸었다. 구글맵 기준으로는 2km가 조금 넘는 거리였는데, 체감상 훨씬 길었다. 길모퉁이마다 냄새가 바뀌었다. 젖은 흙냄새, 튀긴 마늘 냄새, 오래된 나무 창틀 냄새 같은 것들. 관광지에서 기대하는 화려함은 적지만, 동네의 생활감은 선명했다.
올드타운은 중심보다 가장자리가 좋았다
솔직히 푸켓 올드타운의 메인 거리만 보면 조금 정신없을 수 있다. 예쁜 가게가 많고, 주말이면 야시장 때문에 발걸음이 느려진다. 그런데 아침 8시 전후나 오후 비가 지난 뒤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 나온다. 문을 막 여는 식당, 학교 가는 아이들,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먼저 지나간다.
내가 오래 머문 곳은 야시장 구간보다 조금 북쪽의 조용한 주택가였다. 작은 사원 옆길로 들어가니 오토바이 수리점과 현지식 국수집이 붙어 있었다. 국수 한 그릇은 60바트 정도였고, 얼음 든 차까지 마셔도 100바트를 넘지 않았다. 빠통 해변 쪽 식당에서 간단히 먹어도 200~300바트가 쉽게 나오는 걸 생각하면, 가격보다도 속도가 달랐다. 재촉하는 분위기가 없었다.
- 걷기 좋은 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9시 사이
- 탈랑 로드보다 디북 로드, 크라비 로드 뒤편 골목이 한산한 편
- 비 온 뒤에는 보도가 미끄러워 샌들보다 발등 잡아주는 신발이 편함
- 카페보다 현지식 국수집이나 로컬 빵집에 앉으면 동네 리듬이 잘 보임
사판힌에서 본 바다는 관광지의 바다와 달랐다
푸켓여행에서 바다를 아예 빼기는 어렵다. 다만 꼭 선베드와 비치클럽이 있는 바다만 볼 필요는 없었다. 푸켓타운 남쪽의 사판힌 공원은 해변 휴양지라기보다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고 운동하는 바다에 가깝다. 올드타운에서 차로 10~15분 정도면 닿고, 해 질 무렵에는 조깅하는 사람과 가족 단위의 현지인이 많았다.
관광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선 사람보다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근처 노점에서 꼬치와 음료를 사서 바닷가 쪽으로 걸었는데, 그 시간이 꽤 좋았다. 파도 소리보다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래서 더 푸켓의 일상 같았다.
사판힌은 물놀이하러 가는 곳으로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다.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풍경이 아니라 항구와 공원이 섞인 생활형 바다다. 대신 사람이 적은 곳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싶을 때는 꽤 괜찮다. 특히 빠통의 밤거리를 지나온 다음 날이라면 차이가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라와이 쪽 골목은 오래 머물수록 편해졌다
푸켓 남쪽 라와이도 유명한 이름이지만, 해산물 시장 앞만 보고 지나가면 조금 아쉽다. 나는 라와이 해변 뒤쪽 주택가와 작은 카페들이 있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바다는 바로 앞에 있지만 수영하는 해변이라기보다 배가 드나드는 바다라서, 사람들이 한곳에 몰리지 않았다.
라와이에서 좋았던 건 풍경이 과하게 꾸며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 동네 주민, 오토바이로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근처 나이한 비치까지 가면 훨씬 휴양지다운 장면이 나오지만, 라와이 골목의 낮은 온도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점심 무렵에는 햇볕이 강해서 20분만 걸어도 지치니, 중간중간 그늘 있는 가게에 앉는 편이 낫다.
로컬 장소를 찾을 때 내가 피한 시간
푸켓은 시간대에 따라 같은 장소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이 적은 여행을 원한다면 장소보다 시간이 더 중요할 때가 많았다. 올드타운은 낮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카페 손님이 늘고, 해변 쪽은 해 질 무렵에 이동 차량이 많아진다. 반대로 아침 시간의 동네 시장, 비가 갠 직후의 골목, 저녁 식사 전의 공원은 비교적 조용했다.
- 빠통, 까론, 카타 중심부는 숙소나 식사 목적이 아니면 오래 머물지 않음
- 투어 차량이 몰리는 오전 10시 전후에는 인기 전망대를 피함
- 주말 야시장 시간에는 올드타운 중심 대신 주변 골목을 걸음
- 택시는 짧은 거리도 비용이 커질 수 있어 이동 동선을 하루 2~3곳으로 줄임
푸켓여행이 꼭 화려할 필요는 없었다
푸켓은 워낙 유명한 여행지라서 처음엔 나도 조금 걱정했다. 어디를 가도 사람이 많고, 모든 장면이 이미 소비된 풍경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중심에서 한두 블록만 비켜서고, 이동 속도를 조금 늦추니 다른 장면이 보였다.
물론 이런 여행은 효율적이지 않다. 유명 해변 세 곳을 하루에 찍고, 전망대와 야시장까지 이어 붙이는 일정에 비하면 남는 사진도 적다. 대신 기억은 조금 더 오래 갔다. 비가 그친 올드타운의 창문, 사판힌 벤치의 바람, 라와이 골목의 조용한 점심 같은 것들. 푸켓여행을 다시 간다면 나는 또 유명한 곳의 바로 옆길을 먼저 걸을 것 같다. 그 옆길에, 여행지보다 생활에 가까운 푸켓이 남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