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로 골목길을 따라가봤더니 보인 조용한 여행의 얼굴

얼마 전 남해 쪽 작은 마을을 다녀왔는데, 버스 시간표보다 바람 방향을 더 자주 보게 되는 여행이었다. 원래는 대중교통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만, 그날은 동네와 동네 사이가 너무 띄엄띄엄 이어져 있어서 렌터카를 빌렸다. 유명 전망대나 큰 카페를 찍고 다니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지도에서 이름이 작게 보이는 포구, 폐교를 고친 작은 전시관, 점심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는 국숫집 같은 곳을 천천히 지나가고 싶었다.
렌터카가 필요한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온다
국내 로컬 여행을 하다 보면 교통이 여행의 분위기를 꽤 크게 바꾼다. 버스가 하루 5번만 다니는 마을에서는 20분 머물 곳에 2시간을 묶이기도 하고,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읍내에서는 다음 장소를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렌터카가 있으면 이동이 빨라진다기보다, 멈출 수 있는 곳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작은 슈퍼 앞에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으면 잠깐 내려 음료수를 마실 수 있다. 논길 옆에 오래된 정미소가 보이면 차를 세우고 주변을 걸어볼 수 있다. 그런 장면은 목적지 목록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대개 그런 틈에서 생긴다.
물론 렌터카가 언제나 답은 아니다. 서울, 부산, 전주 한옥마을처럼 골목이 좁고 주차가 어려운 곳에서는 오히려 짐이 된다. 반대로 강원 산간 마을, 남해안 작은 포구, 제주 중산간, 충청 내륙의 오래된 읍내처럼 장소 사이 간격이 넓은 지역에서는 꽤 든든한 선택이 된다.
한적한 장소를 찾을 때 보는 기준
나는 렌터카를 빌리면 먼저 유명 관광지 이름을 찍지 않는다. 지도에서 회색 도로와 흰색 도로가 만나는 지점을 본다. 큰 주차장, 대형 카페, 전망대 표시가 몰린 곳은 사람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 대신 작은 초등학교, 보건진료소, 농협 하나로마트, 면사무소 근처를 본다. 이런 곳은 여행지라기보다 생활권이라서 동네의 속도가 남아 있다.
지난번에는 오전 10시쯤 읍내에서 12km 떨어진 포구로 갔다. 차로는 18분 정도였고, 버스로는 환승까지 합쳐 1시간 20분이 걸리는 길이었다. 도착해보니 식당 두 곳, 방파제 하나, 작은 수리조선소가 전부였다. 관광 안내판은 낡아 있었고, 바다 앞 벤치에는 동네 어르신 한 분만 앉아 있었다. 솔직히 볼거리가 많다고 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좋아서 40분 넘게 그냥 걸었다.
- 주차장이 너무 넓은 곳보다 마을 공터가 있는 곳
- 리뷰 수가 수천 개보다 수십 개 정도인 장소
- 영업시간이 짧고 메뉴가 단순한 동네 식당
- 큰 도로에서 10~20분 정도 벗어난 작은 마을
이 기준이 늘 맞지는 않지만, 사람 적은 장소를 찾을 때 꽤 자주 맞아떨어진다. 근데 너무 외진 곳은 해가 지기 전에 빠져나오는 편이 낫다. 길이 어둡고 가로등이 드문 곳에서는 분위기보다 안전이 먼저다.
렌터카 여행에서 의외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다
처음 렌터카를 빌렸을 때는 하루에 6곳쯤은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3곳 정도가 가장 편했다. 한 장소에서 40분 걷고, 다음 장소까지 25분 이동하고, 중간에 밥을 먹으면 시간이 금방 간다. 특히 로컬 여행은 사진 찍을 포인트보다 길을 읽는 시간이 더 길다.
차가 있으면 자꾸 더 멀리 가고 싶어진다. 이게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지도에서 가까워 보여도 산길 14km는 꽤 피곤하고, 해안도로 20km는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 나는 요즘 하루 이동 거리를 80km 안팎으로 잡는다. 제주처럼 도로가 잘 이어진 곳도 120km를 넘기면 산책보다 운전 기억이 더 많이 남는다.
렌터카를 쓸 때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날은 이상하게도 가장 적게 움직인 날이었다. 오전에는 오래된 시장 근처에서 백반을 먹고, 낮에는 폐교를 고친 작은 책방에 들렀고, 오후에는 강가 둑길을 걸었다. 목적지는 세 군데뿐이었지만, 중간에 본 감나무, 빈집 담장, 버스정류장 시간표 같은 것들이 오래 남았다.
차 안에 두면 편했던 것들
- 얇은 겉옷: 바닷가와 산쪽은 기온 차가 크다
- 현금 2만~3만 원: 작은 식당이나 무인 판매대에서 필요할 때가 있다
- 작은 쓰레기봉투: 조용한 마을일수록 쓰레기통이 적다
- 물과 간단한 간식: 오후 3시 이후 문 닫는 가게가 꽤 있다
빌릴 때보다 반납할 때 차이가 나는 부분
렌터카는 예약 가격만 보고 고르면 나중에 피곤해질 수 있다. 보험 범위, 주행거리 제한, 반납 위치, 연료 기준을 꼭 봐야 한다. 특히 지방 소도시에서는 영업소 운영 시간이 짧은 경우가 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하는 곳도 있어서, 기차 시간과 맞지 않으면 하루 일정이 흔들린다.
차종은 큰 차보다 작은 차가 편할 때가 많았다. 로컬 여행에서는 좁은 마을길, 비포장에 가까운 농로, 한 대만 겨우 지나가는 해안길을 만난다. 짐이 많지 않다면 경차나 소형차가 부담이 적다. 실제로 남해의 한 마을에서는 중형차였으면 후진을 여러 번 했을 길을 작은 차로 무리 없이 지나갔다.
주차도 조심해야 한다. 마을회관 앞, 어구가 쌓인 항구 주변, 농기계가 드나드는 길목은 비어 보여도 동네 사람들이 쓰는 공간일 수 있다. 나는 애매하면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물건을 하나 사고, 잠깐 세워도 되는지 물어본다. 짧은 질문 하나로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렌터카가 만들어준 느린 장면들
렌터카 여행의 좋은 점은 자유롭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하다. 내 기준에서는 우연을 받아줄 여유가 생긴다는 쪽에 가깝다. 버스 시간이 없으니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도 되고, 식당이 닫혀 있으면 옆 마을로 넘어가도 된다. 날씨가 흐리면 산 대신 시장으로 방향을 바꾸면 된다.
그렇다고 모든 길을 차로만 다니면 로컬의 결이 잘 보이지 않는다. 차는 마을 입구에 세워두고, 안쪽 골목은 걸어 들어가는 게 좋았다. 낮은 담장 너머 빨래가 마르고, 작은 절 입구에 고양이 밥그릇이 놓여 있고, 오래된 미용실 유리문에 손글씨 가격표가 붙어 있는 장면은 천천히 걸을 때 보인다.
렌터카는 여행을 화려하게 만들기보다, 덜 알려진 곳까지 닿게 해주는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차를 빌린 날일수록 더 천천히 움직이려고 한다. 한적한 동네는 빠르게 훑으면 그냥 조용한 곳으로만 남지만, 조금 오래 머물면 사람들의 생활 리듬이 보인다. 그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잠깐 곁에 앉아 있다 오는 여행이, 요즘 내게는 가장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