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태항산을 조용히 걸어봤더니, 유명 절벽보다 오래 남은 골목과 산길

비 오는 아침, 태항산 입구에서 조금 늦게 걸었다
얼마 전 중국 태항산에 갔을 때, 나는 일부러 첫 셔틀을 놓쳤다. 보통 산 여행은 남들보다 빨리 움직여야 좋다고들 하지만, 태항산은 조금 달랐다. 단체 관광객이 한 번 지나가고 난 뒤의 길이 훨씬 조용했고, 바람 소리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태항산은 중국 허난성과 산시성 일대에 길게 걸쳐 있는 산맥이다. 한국 여행자에게는 곽량촌, 만선산, 팔천협 같은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높고 붉은 절벽, 바위를 뚫어 만든 도로, 깊은 협곡이 이어져서 사진으로 보면 꽤 압도적이다. 그런데 실제로 걸어보면 큰 풍경보다 작은 장면이 더 오래 남는다. 매표소 옆에서 옥수수를 찌던 아주머니, 낡은 삼륜차가 지나가던 마을길, 오전 장사를 끝내고 문을 반쯤 닫은 국숫집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태항산을 하루에 빠르게 찍고 오는 방식보다, 한 마을에 묵고 주변을 천천히 도는 쪽이 더 좋았다. 유명 전망대는 분명 멋있지만, 그곳만 보고 내려오면 태항산은 너무 큰 산으로만 기억된다. 반대로 골목을 조금 걷고, 숙소 앞 의자에 앉아 해가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시간을 보면 이곳이 누군가의 생활터라는 게 보인다.
곽량촌 절벽도로보다 조용했던 마을 안쪽
곽량촌은 태항산 여행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이다. 절벽을 뚫어 만든 도로 때문에 유명해졌고, 실제로 보면 왜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바위벽 옆으로 길이 붙어 있고, 창처럼 뚫린 틈 사이로 협곡이 보인다. 단체 버스가 몰리는 시간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로 꽤 붐빈다.
그런데 나는 절벽도로보다 마을 안쪽 골목이 더 좋았다. 중심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 소리가 금방 줄어든다. 돌담은 낮고, 집 앞에는 고추와 옥수수가 말라가고 있었다. 어떤 집은 문을 활짝 열어두었는데 안쪽에서 라디오 소리만 흘러나왔다. 관광지라기보다 오래된 산촌의 오후에 잠깐 들어온 느낌이었다.
곽량촌을 조용히 보고 싶다면 점심 직후보다 오전 늦게나 해 질 무렵이 낫다. 내가 갔던 날은 오후 4시가 지나자 단체 손님이 확 줄었다. 사진 명소 앞에서는 아직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을 뒤쪽 계단길과 작은 밭길은 거의 비어 있었다. 다만 겨울이나 비수기에는 식당이 일찍 닫는 곳도 있어서 물과 간단한 간식은 챙기는 편이 마음 편하다.
만선산에서는 표지판보다 생활 소리를 따라갔다
만선산 풍경구는 규모가 커서 처음 가면 동선이 조금 헷갈린다. 셔틀버스가 있고, 구간마다 내려서 걷는 방식이라 효율적으로 움직이면 하루에도 꽤 많은 곳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덜 유명한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걸었다. 안내판에 크게 적힌 전망 포인트보다, 마을 주민들이 오가는 길이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산길 옆으로는 작은 물길이 이어졌고, 그 주변에 낮은 민박과 식당이 띄엄띄엄 있었다. 메뉴판에는 면 요리와 볶음밥, 감자 요리 같은 간단한 음식이 많았다. 가격은 관광지 안이라 아주 싸지는 않았지만, 대도시 유명 관광지처럼 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내가 먹은 토마토계란면은 특별한 맛이라기보다 따뜻하고 든든한 맛이었다. 산에서 한참 걸은 뒤라 그런지 국물까지 거의 비웠다.
솔직히 태항산은 교통이 아주 편한 여행지는 아니다. 대중교통만으로 움직이면 환승이 많고, 시간표도 넉넉히 잡아야 한다. 그래서 단체 투어나 차량 대절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조용한 여행을 원한다면 숙소 위치를 잘 잡는 게 중요하다. 풍경구 가까운 마을에 하루 머물면 아침과 저녁의 빈 시간을 쓸 수 있다. 이 시간대에는 산도, 길도, 사람도 조금 부드러워진다.
팔천협의 큰 풍경 사이에서 쉬어 갈 자리
팔천협은 태항산의 웅장함을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곳이었다. 협곡 사이로 물빛이 깊고, 절벽은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다. 케이블카와 유람선,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이 잘 되어 있어 이동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가족 여행객과 단체팀이 많았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는 입장에서는 팔천협이 조금 번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근데 풍경구 전체가 넓어서 시간대를 잘 피하면 의외로 고요한 구간이 있다. 내가 좋았던 곳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는 중간 산책로였다. 전망대처럼 인증 사진을 찍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물소리가 가까웠고 바위 그늘이 길게 내려와 잠깐 앉아 있기 좋았다.
태항산의 유명 코스들은 대부분 규모가 크다. 그래서 빠르게 이동하면 계속 위를 올려다보고, 계속 사진을 찍게 된다. 하지만 중간에 한 번쯤 카메라를 내려놓으면 산의 인상이 달라진다. 절벽의 높이보다 바람의 방향이 느껴지고, 사람들의 말소리보다 발밑 자갈 소리가 먼저 들린다. 나는 그런 순간 때문에 태항산이 단순한 절경 여행지로만 남지 않았다.
태항산을 덜 붐비게 걷고 싶다면
- 숙소는 풍경구 밖 대도시보다 마을 가까운 곳이 좋다. 이동 피로가 줄고, 아침과 저녁의 조용한 시간을 쓰기 쉽다.
- 단체 관광객이 몰리는 오전 첫 시간과 점심 직후를 피하면 체감 인파가 꽤 줄어든다.
- 전망대만 이어서 돌기보다 마을길, 식당 골목, 숙소 주변 산책로를 일정에 넣으면 여행이 훨씬 느슨해진다.
- 카드 결제보다 현금이나 현지 결제 앱이 편한 경우가 있어 작은 가게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미리 준비하는 편이 좋다.
- 태항산은 날씨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비가 온 뒤에는 절벽 색이 짙어지고 물소리가 커지지만, 길이 미끄러울 수 있다.
태항산은 유명한 장면이 워낙 강한 곳이다. 절벽도로, 협곡,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산세만으로도 충분히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나는 이곳을 다시 간다면 또 마을에 하루 묵을 것 같다. 관광객이 빠져나간 뒤, 식당 불빛이 하나씩 켜지고 산 그림자가 골목까지 내려오는 시간. 그 조용한 저녁이 태항산의 진짜 얼굴에 더 가까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