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플레이스
제너럴리스트의 色다른 이야기

하동 여행지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니

Last Updated :
하동 여행지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니

하동에서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이름난 관광지보다 시장 골목의 평범한 오전이었다. 가게 문이 하나둘 열리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짧게 인사를 나누는 시간. 여행자인 나는 구경할 것을 찾느라 서두르다가 그 풍경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 하동 여행지를 묻는다면 하동읍에서 시작해 섬진강을 따라 악양 평사리까지 가는 길을 이야기하고 싶다. 장소는 몇 군데 되지 않지만, 하루가 모자라지 않을 만큼 천천히 걸을 수 있다.

하동읍에서는 시장 골목부터

하동공설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상점 사이의 좁은 길이 눈에 들어온다. 시장 안을 한 바퀴 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지만, 나는 진열대만 보고 빠져나오기보다 바깥 골목까지 걸었다. 식재료를 사는 사람과 가게 앞을 쓸고 있는 사람이 보이는 길에서는 여행지 특유의 들뜬 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누군가에게는 늘 지나가는 길이라는 점이 좋았다.

시장 구경은 오전에 하는 편이 어울린다. 다만 어느 날에 가느냐에 따라 문을 연 가게와 골목 분위기는 달라진다. 조용한 시간을 원한다면 사람이 몰리는 행사가 있는 날도 피하는 게 좋겠다. 작은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통행을 막지 않고, 카메라를 들기 전에 한 번 주변을 살피게 된다. 이곳은 누군가의 일터니까.

시장 주변에서 밥을 먹는다면 재첩국도 하동다운 선택이다. 특별한 맛집 한 곳을 찾아 이동하기보다, 그날 문을 연 식당에서 따뜻한 한 끼를 먹고 다시 걷는 흐름이 이 동네와 잘 맞았다. 시장에서 송림공원으로 이어지는 하동읍 안의 동선을 먼저 잡으면 차를 여러 번 옮길 일도 줄어든다.

송림에서는 강보다 소나무 아래에 오래 있었다

하동송림공원은 섬진강 옆에 있다. 강을 보러 들어갔다가 소나무 아래에 더 오래 머물렀다. 나무 사이로 빛이 조금씩 옮겨 가고, 숲을 벗어나면 강변의 시야가 탁 트인다. 같은 자리에서 몇 걸음만 움직여도 분위기가 달라져서 벤치에 앉았다가 다시 천천히 걸었다.

이 숲은 오래전 하동읍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모래를 막기 위해 조성됐다고 한다. 한국관광공사 안내에서 그 이야기를 읽고 보니, 멋진 풍경이기 전에 동네를 지키던 숲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길이 있는 곳이라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도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각자 자기 속도로 지나갈 여유가 있다.

강변에서는 날씨를 조금 살피는 편이 좋다. 햇볕을 받으며 걷는 구간과 나무 그늘 아래의 느낌이 꽤 다르다. 여름 한낮이라면 숲에 머무는 시간을 넉넉히 두고, 계절이 선선할 때는 강 쪽까지 걸어 나가도 좋다. 나는 이곳에서 다음 장소로 서둘러 출발하지 않고, 바람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잠깐 앉아 있었다.

악양에 닿으면 동정호와 들판을 한 걸음씩

하동읍을 떠나 악양 쪽으로 올라가면 여행의 폭이 달라진다. 평사리에서는 동정호와 들판을 함께 걸을 수 있다. 동정호 둘레에 서면 물 가까이의 풍경이 먼저 보이고, 들판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멀리 부부송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을 찍고 곧장 돌아가기엔 들판의 빈 공간이 아까웠다.

동정호 주변은 산책하는 사람도 찾는 곳이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장소를 기대하기보다, 넓은 풍경 안에서 조용히 걸을 길을 찾는 마음으로 가는 게 좋다. 부부송은 가까이 다가가야만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들판 가운데 선 두 그루를 멀리서 바라볼 때, 그 사이를 채운 논과 계절의 색까지 함께 보인다.

평사리 들판은 농사짓는 땅이다. 논둑이 걷기 좋아 보여도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농기계가 지나거나 마을 사람이 오갈 수 있으니 차를 세울 때도 정해진 주차 공간을 찾는 게 마음 편하다. 최참판댁을 둘러볼 생각이라면 그쪽 주차장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고, 호수와 들판 산책이 목적이라면 동정호 쪽에서 시작해도 된다.

많이 보기보다 한 구역을 오래 걷는 하루

하동읍의 시장과 송림, 악양의 동정호와 평사리 들판 정도면 하루 동선이 된다. 대중교통으로 움직인다면 하동읍에서 악양 방면 버스를 확인해 두는 게 좋다. 농어촌버스는 기다리는 시간이 여행의 속도를 크게 바꿀 수 있어서, 출발 전 하동군 교통 안내에서 그날 운행 정보를 다시 보는 편이 안전하다. 차로 간다면 각 장소에서 내려 걷는 시간을 넉넉히 잡고 싶다.

솔직히 이 길에는 계속 감탄할 만한 장면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시장에서는 평범한 오전을 지나고, 송림에서는 나무 아래 쉬고, 평사리에서는 같은 들판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하동을 떠난 뒤 생각난 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유명한 곳을 몇 군데 갔는지보다, 남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으며 내 걸음도 조금 느려졌다는 감각이 오래 남았다.

하동 여행지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니 - 요약
하동 여행지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니 | 커먼플레이스 : https://commonplace.kr/10926
제너럴리스트의 色다른 이야기
커먼플레이스 © commonplace.kr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